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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얼빈, 비겁하지 않게 살아가기.
    문화생활 2023. 1. 21. 23:59


    하얼빈을 읽기 전 즈음에, 유독 마음이 유들유들하고, 마냥 힘들기만 하던 그런 시기였다. 큰 어려움은 없는데, 어느 순간 굴러가던 공이 멈추듯 스르륵 멈춰버린 나는 계속 멈춰있으려는 관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계발이나 동기부여 관련 서적들은 너무 순하고(soft) 뻔해서 따분하기만 하였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는데 마침 독서모임 덕분에 읽게되었다. 생각보다 너무 유익한 자극을 얻었다.

     

    일단 한 나라의 지도자를 암살하려고 계획하기까지 그렇게 큰 고민이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마치 집에 들어온 파리를 잡는 것과 같은 정도의 고민으로 느껴졌다. 물론 파리를 잡는 것 보다는 좀 더 계획을 짜고, 힘도 들고 위험부담도 컸다. 소설에서는 산에서 사슴을 사냥을 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고민과 고됨으로 암시를 했지만, 내가 소설에서 느낀 것은 불청객을 큰 고민없이 제거한다는 것에서 파리정도로 느껴졌다.

    파리든 사슴이든 암살의 성공유무를 제쳐두고 그의 의도가 언제든 드러나면 사형을 면치 못한다. 게다가 이토를 암살한다고 해서 당장 독립 되는 것도 아닌데,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위해 자신의 목숨 바치는 일이 과연 보람있는 일이었을까? 이 소설은 그것에 관해 나의 생각을 정의해 주었다. 비겁하게 오래 살아가는 것보다는 떳떳하게 나의 소신을 지키며 하루를 사는게 더 갚진 삶이라고.

    어려운 확률로 기적같이 주어진 삶. 재밌고, 즐겁게, 혹은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서 먹고 노는 것이 내 인생을 가장 훌륭하게 살아가는 길 일까? 이 육체의 편안함과 만족만을 위해 산다는 것이 이 삶의 궁극의 목적이 될까?

    안중근은 육체의 안락함 보다는 그저 자신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한 것이다. 나라를 빼앗겼다는 사실이 자존심도 상하고, 전보다는 불편함이 많아진 삶이지만, 어느정도 자존심을 버리고 세상이 원하는데로 맞추고 살아간다면 그래도 내 가족들과 나쁘지 않은 삶을 살수는 있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며 나라의 어려움을 외면했다는 죄책감보다는 기쁨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삶을 살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중근 의사는 지금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어떻게 반응을 할까? 혹시 나의 물음에 그가 대답을 할 수 있다면, 부디 그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해주었으면 한다. 자신이 사형당한 이후 독립운동 본부가 자신의 처자식을 보살펴주지 못한것은 서운하지만, 자신이 한 일에는 조금도 후회가 없노라고 말이다.

     

     

     


    목숨을 갖게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더 나은 이상적인 내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모습은 외형을 값비싼 것으로 치장하는 일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이 되어가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외형을 치장하는 것으로 자신의 이상을 표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그런 치장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체는 그 과정을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안중근 의사는 가장 이상적인 자신의 삶을 위해 육체를 사용한 것이다. 

    무모해 보이기만 하던 독립운동, 결국에는 자주독립을 하지도 못했는데 그런 활동들이 뭐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들의 죽음은 정말 정당했는가. 불필요한 젊음들을 너무 많이 희생한것은 아닐까. 어차피 될 독립이었는데.

    아니, 그렇않았다. 그들의 희생과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프레임이 더욱 더 견고해진것이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뭉치고,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움직임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제법 당연하다.

     

    결국 먼 미래에는 국가라는 개념은 정말 상징적으로만 남게될지도 모른다. 축구 소속팀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쉽게 바뀔 수 있는 가벼운 개념으로. 기후 때문에 아마 지리적 특성에 따른 문화만 남지 않을까. 이민도 많이 오고가고, 여행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예전보다 많아지고, 인터넷의 발달로 국가간의 문화가 점점 더 섞여가니까 계속 섞여가다가..먼 미래의 어느 날, 역사책을 보고 맘에 드는 나라를 내 출신국가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국가간의 전쟁이나 침략이 일어나지 않는한 국가의 프레임은 느슨해져만 갈것 같다. 이미 늘어진 고무줄처럼 느슨해져 있는데, 지금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능할까? 

     

     

    삶을 편안하게 오래사는 것만이 중요한게 아니다. 

    안중근 의사가 살던 시절에는 국가를 위한 희생은 당연한 것이 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나는 우리나라가 좋다. 이 나라 저 나라 살아보니 우리나라가 제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국가의 운명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날은 오지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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