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으로-
롱블랙 덕분에 또 좋은 브랜드를 알았네.
아이헤이트먼데이.
잘나가는 양말브랜드. 대표는 어릴 적부터 니트를 좋아하여 패션학교를 가고, 맘에드는 패션회사 인턴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패션회사에 들어왔다는 것 하나로 너무 기뻐서 온갖 잡무를 신나게 다 하고 머지않아 정직원까지하고 열심히 해서 나중에는 회사에 들어간지 5년만에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차린게 이 회사.
나도 이 대표처럼 그런 순수한 열정으로 열심히 내달리던 때가 있었는데, 나와 이 회사의 대표는 왜 다른 결과를 얻게 되었을까?
나는 사진으로 일을 하고 싶어서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곤 하였는데, 혼자 한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사진찍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일도 정말 즐겁게 열심히 하였다. 사진일 뿐만 아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너무 신나고 열정적으로 달려들어서 사장님이나 상사는 나를 좋아하였지만, 동료나 동기들은 일을 벌리는 나를 말리곤 하였다.
어느 순간 나의 열정은 직장의 한계에서 무너지곤 하였다. 내가 열심히 한것은 그냥 모두 사장님에게만 좋은 일 시켜주는것이고, 내가 아무리열심히해도 이 회사에서의 내가 가능한 위치, 내가 받을 수 있는 처우,.. 이거 다음스텝이 보이지 않으면 급 사기가 떨어져서 일을 못하는 병에 걸린다. 가능한 큰 회사로 가보자는 생각으로 이직에 이직을 하여 정말 성공적인 이직을 하였지만, 그곳에서 깨달았다. 아, 이게 내 일은 아니구나.
지금은 내 일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회사라는 곳에서 벗어나 프리랜서가 된지 3년쯤 된 것 같다. 3년전부터 온전한 내것을 하고 싶었는데, 반 직장인, 반 백수로 어찌어찌 지금까지 살았다. 일이 많아 돈 벌릴때는 많이 벌리고, 아닐때는 전혀 아니였다. 요 몇년동안은 일이 너무 신나서 하트비트 뚬치뚬치 하며 일한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대로 멈추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에 맘에 들지 않는 일도 계속 받아서 하였다. 그러다 그런 일 마저도 떨어지게 되니 나는 바퀴가 찌그러져 멈춰버린 자전거마냥 쓰러져버렸다. 딱 그거하나 신이났다. 내 마음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예아~! 그리고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게되었다.
달리던 내가 주저앉고나서 이제서야 재정비라는 말을 슬그머니 하고 있지만, 사실 죽고 싶었다. '내 인생을 내가 망친것 같아, 완전 잘못된길로 한참 들어온것 같아.'라며.
나의 그동안의 행보들이 누군가가 볼 때는 대책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였어도 내게는 어느 정도의 대책과 안전장치는 확인하고 움직인다. 교토삼굴은 딱 나를 두고 하는 얘기다. 다만 그 선택이 주변에 흔한 선택이 아니여서 그렇지, 대한민국에서 아주 독보적인 행보는 아니였다.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는 유난히 모험을 하지 않고 어제같은 오늘을 보내는, 잔잔한 일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인이 되고나니, 난 그렇게 특이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잔잔한 사람들 사이에서 난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싶었지만, 다행이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안전하다는 판단만 된다면 스카이다이빙이든 스쿠버다이빙이든 스스럼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선택한 길은 여느 때처럼 이게 맞다고 씩씩하게 들어왔지만, 계속 내 딛는 발걸음마다 진흙탕길 처럼 앞으로 나아가는게 너무 험난했다. 그 때도 힘은 들었지만 초반엔 늘 있을 수 있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며 내 감정은 고이접어 한쪽으로 밀어놓고, 한걸음 한걸음을 걸어나갔다. 그렇게 나는, 내가 거울로 나를 봐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힘들만큼 진흙을 옴팡 뒤집어 쓰고 뻗어버렸다. 멈추면 쓰러질것 같아서 계속 걸어들어왔는데, 너무 힘들어 어느순간 뒤를 돌아봤는데, 너무 많이 걸어들어와서 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나의 대책은 어디갔지? 이런 공허함은 내 각본에 없던건데? 내 인생을 내가 망친것 같아. 완전 잘못된길로 한참 들어온것 같아/ 어느 순간 죽음의 충동이 훅 하고 올라왔다. 손목..? 안되겠지.. 그럼 한번에 목...? 높은곳..? 나도 모르게 방법을 고르고 있었다.
진흙이 고치가 되어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게 되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무 외면하고 살았다는게 지금의 결론이다. 내것을 하고 싶은데, 방법만 있고, 내용이나 목적이 없었다. 취향을 잃어버린다는게 이렇게 무서운거로구나.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사진을 한다, 글을 쓴다, 블로그를 한다, 유튜브를 한다. 이거 다 매체잖아. 그 안에 뭘 담을 건데? 브랜딩과 마케팅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도 공허하고, 내 길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내 안에 나의 색깔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배가 불러서 그런소리가 나온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래, 내게는 절박함이 없다. 부유함이라곤 애매하게라도 없으면서, 매일 요리를 하지 않아도 끼니를 적당히 해결하며 게으르게 살아갈 수 있다. 내게 없는 절박함을 만들고자 힘든 상황으로 나를 등떠밀 용기도 없었다. 이건 완전 최악의 상황이다. 진흙밭은 나의 정체성을 덮어버렸지만 나를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게 하였다. 불편하지도 않고. 이 상태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이대로 눈을 감는 것이다. 잠을 자던, 이대로 입을 닫고 굶어죽어버리던.
떠올릴려고 애쓰고 있고, 다시 그런 마음을 가져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 뭘 좋아했었는지 기억이 나긴하지만 그때와 같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사실였다. 하지만 요즘에서야 조금씩 뭘 해야겠다는 것에 대한 윤곽이 생기고 있다.
비가와서 그런가, 어제까지만 해도 굉장히 기분도 좋고, 온 마음이 희망으로 가득했는데,
칙칙한 하늘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 생리통으로 뻐근한 아랫배와 물먹은 솜뭉치같이 무거운 몸.
다시 눞고 싶은 충동에 거의 넘어갈 뻔했으나 그나마 집에 있던 인스턴트 커피가 날 살려줬다.
지금 그렇게 나쁜 상태는 아니다.
이 깜깜하고 구석진 곳은 왠지 내가 잊고 있던 나쁜 기분을 소환시키는듯한 기분이 든다.
내일은 꼭 일찌감치 밝은 곳에서 글을 써야겠다.
22. 06. 27. 월요일. 사무실 구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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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한지 얼마 안된 블로그라고, 찾아오는 이도 거의 없을거라는 생각에 보이는 이를 배려하지 않고 내 맘대로 글을 갈겨버렸습니다. 항상 종이에만 글을 쓰다 공개된 곳에 글을 쓰는 연습을 하기 위해 쓴다고 나름 다듬어 올립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모두 읽어주셨다면 고맙습니다. 나름의 즐거움이 있으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